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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거

 

 

벌써 오래 전 겨울이었다. 그때 나는 을지로 3가 지하철역에서 명동성당 쪽으로 난 지하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. 매일 아침 지나는 길이었고 늘 그 자리에 앉아 손 벌리고 있는 걸인들에게 나는 무심 했었다. 하지만 그날 아침 처음 본 그 할머니만은 무심할 수 없었다.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할머니 곁으로 가면서 나는 주머니 속을 뒤적거렸다. 얼마를 드려야 할까. 어디 모시고 가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.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오고 갔다. 할머니 추우시죠.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을 지껄이며 나는 무안함을 감추려 애섰다. 할머니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. 할머니,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사 잡수세요. 기껏 5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며 생색을 냈다. 순간, 평화롭던 할머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. 젊은이, 그렇게 큰 돈을 함부로 쓰면 못써! 나는 그렇게 큰 돈 필요 없으니까 5 백 원만 줘. 아니예요, 할머니. 많지 않으니까 받으세요. 나는 억지로 할머니 손에 돈을 쥐어 드리려 했다. 할머니는 매정하게 뿌리쳤다. 할머니, 잔돈이 없어서 그래요. 어서 받으세요. 잔돈이 없으면 그냥 가! 나는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. 그 겨울 나의 적선은 그렇게 무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. 다음날 아침, 그 자리에 할머니는 없었다. 을지로 일대 지하도를 다 뒤지고 다녔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.